단기 선교 일기 01

작성: 2013 단기선교팀 총무 김윤근
(최근 일기가 먼저 나옴)

7-2-2013 (화)
단기선교 팀을 떠나는 날 하루 전인 주일에는 우리 모두는 이상기 선교사님께서 개척하신 루스데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 날은 김기웅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고, 김우창집사님의 헌금 특송이 있었다. 예배를 드리는 우리와 현지 교인들은 모두가 주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는 것을 확인하며 기쁨이 가득한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다. 2011년도에 내가 방문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얼굴들이 보였고, 선교사님께서 단기선교팀을 소개할 때, 현지 교인들은 정말도 반갑게 환영을 해 주었다. 그 자리에는 2010년 내 강의를 들어서 처음 만나게 된 마하일 형제가 눈에 들어왔다. 수도 리마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친구들과 차려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뚜루히요에 온 것이다. 미하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학생 전도사역의 첫 열매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소중한 청년이다. 그리고 2011년도에 강의에 들어와서 만나게 된 리까르도 학생도 보였다. 2년전에 만났는데, 지금도 교회에 꾸준히 참석한다고 선교사님께서 나에게 말해 주셨다. 리까르도는 영어도 잘하는 똑똑한 학생으로, 이번 강좌에 나를 도와 통역을 해 주기로 했다. 2년전에 만났던 학생을 다시 만난것도 감사한데, 그가 나의 사역을 이해하고 도와 준다니 나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주안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을 회방하지 않고, 서로를 돕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일 오후에 리까르도와 함께 내가 한달동안 머무를 장소를 알아보러 나섰다. 내가 이곳 뚜루히요를 2005년 부터 단기선교로 오게 되었는데, 2009년도에 2시간 떨어진곳 초코팡 지역에 사역을 하러 갔을 때 타 본 시외 버스 말고는 처음으로 시내버스를 타 보왔다. 안전 때문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단기선교팀만 버스를 타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뚜루히요는 치안상태가 미국보다 좋지 않다. 대 낮에 깽단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두목들의 자녀들을 학교 앞에서 서로 살해당하는 일이 얼마전에 있었다. 미화 20불이면 청부 살인이 가능한 나라이다. 나는 현지인 리까르도와 함께 가므로 시내 버스를 타고 약 10분거리에 있는 뚜루히요 국립대학에 내렸다. 그 근처에 있는 자취방을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가 말렸다. 위험하다고 하면서.. 선교사님의 차를 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내가 잠깐 한눈을 팔았던 것이다.
단기선교팀이 떠난 후 월요일 오후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선교사님과 수퍼에 갔고, 내가 리까르도와 보았던 자취방을 보여드렸다. 한달에 260솔 (미화 100불) 하는 방인데, 방 하나와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 문은 없고, 방의 크기는 미국 가정집 화장실만한 크기로 가구는 없고 가로세로길이가 각3m되는 방이다. 이방은 옥상에 위치했는데, 한국식으로 말하면 옆에 아무도 없는 옥탑방이다. 선교사님은 내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강력 반대하셨다. 대학교의 4번째 문이 보이는 아주 가까운 곳으로 주위에 식당도 있는 곳으로 위치는 금상첨화였다. 옥탑방 말고는 다른 빈 방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곳을 포기하게 되었다. 선교사님은 루스데페 교회의 2층사무실에서 내가 머무를 것을 요구하셨다. 내가 2011년도에 2층사무실에서 머문적이 있는데, 선교사님께 폐가되고, 나로 인해 선교사님의 일상이 달라지는 것이 싫어서 올해는 독립을 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교회에 머물수 밖에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나 스스로 해결하는 조건을 걸고 머물기로 했다. 선교사님 가정은 아침을 거의 드시지 않고, 점심은 2시경에 드신다. 그런데 나로 인해 사모님께서 아침도 차리셔야 되고, 점심도 12시경에 드셔야되고 하는 문제가 생겨서 내가 그런 조건을 내 세운 것이다. 며칠이야 덜 부담스럽지만, 1달동안은 나 자신이 부담스러워서이다.
화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본격적으로 이곳에 겨울이 시작되어서 날씨는 우중충하고 쌀쌀하다. 내가 머무는 2층사무실 창문쪽으로 차가 다니는 동네 길이 나 있는데, 아침 6시 30분이면 매일 어김없이 과일파시는 아저씨가 확성기를 틀고 리어커를 밀며 나타나시는데, 2011년도에도 들은 적이 있는 익숙한 음성이었다. “빠빠야 빠빠야 (열대과일)”하시며 앰프가 달인 확성기를 트시는데 잠이 벌떡 깬다. 다니는 차들도 경적을 자주 울리므로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래도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불편해도 상관없다. 내가 이곳에 관광을 하고 쉬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불편함이 있을 것으로 이미 알고 왔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을 선교사님께서 완전히 이해하시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시기 때문이다. 선교사님은 18년동안 뚜루히요에서 사역을 하셨는데, 내게 이런 말씀을 자주하신다. 선교사업은 주님이 오실 때 까지 하는 것으로 선교사만이 하는 일이 아니고, 미국이던 한국이던 크리스찬 개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내가 있는 한달 동안에 강의에 들어 온 대학생 중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은 약 5-7명정도 이고, 내가 이곳을 떠난 후에는 약1명이 루스데페 교회 예배에 계속 참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미하일과 리까르도가 그 경우이다.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선교사님으로 부터 양육을 받고 믿음이 자란 학생들을 1년 2년 후에 다시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고,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주님 안에서 나만이 느끼는 기쁨이자 은혜요 특권이다. 이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로는 모를 것이다.

루스데페 교회에서 주일 친교 후 다시 만난 미하일과 함께

루스데페 교회에서 주일 친교 후 다시 만난 미하일과 함께

알콜버너로 처음 한 점심. 밥 계란 김구이 비프저키

알콜버너로 처음 한 점심. 밥 계란 김구이 비프저키

7-1-2013 (월)
2013년도 단기선교팀은 김기웅담임목사님과 김우창 집사, 허정수 집사, 김윤근 집사 (저자) 인데, 6/24 (월) 아침에 그랜 래피즈를 떠나 수도인 Lima 공항에 저녁 10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선잠을 자면서15시간을 기다린 후, 다음 날6/25 (화)에 뚜루히요 (Trujillo) 국내선을 갈아타고 오후 4시에 사역지 도시인 뚜루히요에 도착했다.
선교팀은 사역을 은혜롭게 모두 마치고 7/1 (월)에 뚜루히요를 떠났다. 이 기간동안에 자세한 사역보고는 돌아간 단기선교팀에서 할 것이다.
나는 약 1달동안 더 이곳에 머무르면서 뚜루히요 국립대학 전자/컴퓨터 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텐시브 전공 과목을 가르치게 된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사실 이것을 접촉점으로 활용을 하여 새로운 현지인을 만나, 주님을 소개하며 이상기 선교사님께서 개척하신 Luz de Fe(믿음의 빛) 교회로 전도하는 것이 사역의 핵심이다. 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동안 수업이 진행되는 고된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수업에는 약 50명의 학생들이 수강을 하게 된다. 토요일에는 학생들을 교회로 초대하여 점심 친교를 하는데, 약 30명의 학생들이 오게 되며 점심 후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일을 하게된다.

Lima공항 커피숖에서 15시간을 기다렸는데, 자리가 좁아서 교대로 잠을 잤다. 주무시는 김목사님

Lima공항 커피숖에서 15시간을 기다렸는데, 자리가 좁아서 교대로 잠을 잤다. 주무시는 김목사님